동유럽

보스니아 - 헤르체고비나의 수도- '사라예보와 라틴다리 이야기' 탐방 제 2부/

스마일 김상호 2014. 12. 11. 20:49

 

◀사라예보▶

 

 

사라예보는 1463년부터 415년간이나 터키의 지배를 받은 곳이다. 무슬림이40%, 정교회가 30%,

카톨릭이 15%를 차지한다.

 사라예보하면 " 이에리사" 탁구선수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. 1973년 세계탁구 선수권 대회가  열린

장소로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도시다. 우리나라 여자 탁구가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단체전에

서 금메달을 딴 곳이 사라예보. 이곳을 돌아보려는 생각에 설렘과 기대로 들 떠 있었다.

 

 

 

베라트카 강

 

라틴 다리에 얽힌 역사 이야기

 

보스니아 사라예보를 가로지는 베라트카 강 위에 놓인 여러 개의 다리 중 하나이다.

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황태자와 태자비 소피아는 사라예보를

친선 방문하게 된다.

 오픈카를 타고 시청으로 가기 위해 라틴 다리를 건너던 중, 세르비아 비밀 청년 조직

결사단이 황태자가 탄 차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로 돌아간다[베오그라드의 

 검은 손 조직에 의해 폐결핵이 있는 청년을 모아서 교육시킴].

황태자는 예정대로 시청 방문을 마치고, 숙소인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문병을  위해

병원에 갈 것을 명령한다. 

 

 그런데 운잔기사에게 이 사실이 전달 되지 않아 비극이 일어난다.

당연히 숙소를 향해 운전하던 기사에게 황태자는 병원으로 갈 것을 지시한다.

 기사가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라틴 다리 앞 사거리 카페에 모여 실패로 돌아간 처음

거사를 반성하며 우울해 있던 결사단의 눈에 황태자의 모습이 들어왔다.

이때 결사단 중 17살의 가브릴로 프란치프라는 청년이 카페에서 뛰어 나오며 소피아

가슴에  한 방, 황태자 목에 한 방씩 총을 쏴 현장에서 황태자 부부가 사망하는 사건이

발생하였다.

암살자 프린치프는 체코 수용소에 갇혀 폐결핵으로 죽었다고 한다.

 

한 달 후 오스트리아는 독일에게 양해를 구하고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.

이것이  세계 제 1차 대전의 시작이다.

아름다운 도시 사라예보의 라틴 다리가 졸지에 비극의 장소가 되고 만것이다.

 

 

 

 

라틴 다리

 

 

 

 

마켓과 여관 자리

 

 

 

 

페르하디아 거리의 성당과 이교회의 성인상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열심히 설명 해 주는 현지 가이드입니다, 모습이 이에리사를 닮은 것,,,! ?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가지후스레브 베그 모스크 사원 ,기도를 위해 발을 씻는모습이.

 

기념품을 산후 미녀 줌마의 모습을 허락받고 담아 았다.

 

 

 

 

 

거리의 요모조모.

 

커피한잔

이어서 모스타르 편을 올립니다.

고고